가르침 대신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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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쿤글로벌 김종박대표


    2015. 06. 12. 금요일./ 2019. 12. 12. 목요일.
    제가 쓰는 온라인 해외직판기를 읽고 보내온 어떤 분의 회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종박 대표님.

    저는 설명회에 참석했던 ○○○라고 합니다.
    꾸준히 이메일, 카톡, 홈페이지, 블로그 등으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사업이든 인생이든 먼저 길을 가 보신 분이 뒤에 따 라 오는 사람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시는 게 많이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 그렇지 못하죠.

    제가 김종박대표님 글을 아주 꼼꼼히 보는 편인데요, (홈페이지에 직접 작성하신 모든편을 꼼꼼히 모두 정독 했습니다)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되느냐면, 보통 일정한 사회적 지위 혹은 역할을 수행하시는 분들은 대개 강의하듯 내지는 훈계(?), 더 나아가 전문가의 규격을 항상 유지하며 글을 쓰는 것이 관례인데요, 대표님의 글을 읽으면 너무나 솔직하고 가감이 없고 전문가의 냄새를 다 제거하여 참으로 읽기에 편하고 진실성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신뢰가 갑니다. ^^

    이렇게까지 독자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그것도 실제 경험으로부터의 지식을 잘 설명하는 것을 최근에 본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더욱 사업 발전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처럼 뒤에 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회사 안에서나 회사 바깥에서나 가르쳐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참 조심합니다. 왜냐면 제가 청중일 때, 혹은 가르침을 받아야 할 때, 괴로웠던 걸 생각하면, 제가 가르치는 게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빠져 나갈 수도 없는 자리에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 지루한 잔소리를 듣는 건 고문입니다.

    온라인 해외직판 설명회나 전언 말고도, 회사 대표이고 또 이미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가르쳐야 할 때가 많습니다. 비단 이런 조건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는 위치에 설 때가 적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이고, 또 형이고, 언니이고, 누나입니다. 직장에서는 상사입니다. 사회에서는 선배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르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잘 가르치는 축입니다. 잘 가르치는 쪽이다 보니 제가 배워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 다른 사람보다 훨씬 괴롭습니다. 논리를 잘 따지는 사람은 논리가 엉망인 걸 못 견디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정리를 못하는 걸 못 견디는 것처럼, 잘 가르치는 사람은 못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거나설명할 때 견디기가 참 힘듭니다.

    가르친 경험이 무척 많기 때문에 요령도 쌓였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사람을 가르치는 제 규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경험을 나눌까 합니다. 왜냐하면 티쿤글로벌이 해외직판 분야에서는 아무래도 앞서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 구성원이 바깥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설명하고 가르치는 자리에 설 때가 많은데 이때 활용하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꼭 회사 일이 아니더라도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도 가르치는 방법을 잘 알면 여러 모로 쓸모가 있습니다.

    가르침 대신 나눔

    저는 온라인 해외직판 설명회나 주례 전언 발표 때, 가르치려고 하지 않게, 그리고 잔소리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합니다. 정말 기도합니다. 제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되게 해달라고, 그리고 격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르친다는 생각 자체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르치는 대신 경험을 나누는 방법을 씁니다.

    해외직판 설명회 때도 거의 대부분 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회사 이야기도 주로 저와 연결 시켜서 설명합니다. 듣는 분들은 대부분 제 경험으로 듣습니다. 그러니까 긴 시간이어도 크게 지루해 하지 않습니다. 경험 나눔으로 진행하면 강의든 설명회든 실패는 피할 수 있습니다.

    주장을 하면 옳다 그르다 다툼이 생기지만 경험을 나누면 다툴 게 없습니다. 경험은 옳고 그르다고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나누면 설사 어떤 분야에서 저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잘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르치는 게 아니고 나누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게 옳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이론, 실행해보지 않은 이론은 공허합니다. 자기는 해보지도  않은 이론을 가르치는 건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으면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대신 내가 해보니까 이렇더라 혹은 저렇더라고 전하는 것이 훨씬 생생하고 재미 있습니다. 이론을 이론으로 푸는 것도 물론 쓸 수 있는 방법입니다만, 이론을 적용해본 경험을 푸는 게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나눔 가이드 라인은 이것을, ‘너, 우리라는 말을 하지 말고, 나 이야기를 하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반론, 이론은 내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의 이야기입니다. 일반론과 이론을, 내가 해보니 어떻더라고 하는 게 훨씬 좋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렇게 한다. 내가 이렇게 한 이유는 이런 거다. 해봤더니 어떻더라’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하라는 겁니다. 나눔 가이드라인에서는 이것을 ‘자신의 경험, 힘, 희망을 나누세요’라고 가르칩니다. 이론 말고, 자신의 경험과 힘, 희망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저는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이 방법을 쓰면, 대개 처음에 제게 메일 보내온 분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일정한 사회적 지위 혹은 역할을 수행하시는 분들은 대개 강의하듯 내지는 훈계(?), 더 나아가 전문가의 규격을 항상 유지하며 글을 쓰는 것이 관례인데요, 대표님의 글을 읽으면 너무나 솔직하고 가감이 없고 전문가의 냄새를 다 제거하여 참으로 읽기에 편하고 진실성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신뢰가 갑니다. ^^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하면, ‘전문가의 냄새가 제거됩니다’. 제게 이메일을 보낸 분 글에는 잘난 척하고 전문가인 척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것

    가장 잘 가르치는 방법은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이미 기원전 5세기에 소크라테스가 정립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해서 상대방이 스스로 모순된 것을 발견하게 하거나, 상대방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했습니다. 이걸 산파술(産婆術)이라고 불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가 바로 산파였습니다. 산파는 애를 직접 낳는 게 아니라, 낳는 걸 돕는 역할을 합니다. 억지로 주입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내 경험을 나눠주는 것도 일종의 산파술입니다. 내 경험을 잘 듣고 자기와 비교해보게 하는 방법입니다. 혹은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방법입니다.

    어른을 상대할 때는 이 방법이 매우 효과가 높습니다. 분명히 지식을 전하는 것이지만, 성공하고 실패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거부감이 없습니다. 저도, 경험한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잘 집중합니다. 어떤 사람이 고객을 만나서 설득한 이야기, 전시회에 참가한 이야기, 상품을 개발한 이야기를 들으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저 스스로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론과 원리를 들을 때면 오랫동안 집중하기 힘듭니다. 이론은 경험 속에 녹아야 진짜 이론이 됩니다. 그러니까 경험을 나누는 것이 훨씬 이론을 잘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경험을 나누면 바보가 아닌 이상 스스로 깨닫습니다. 티쿤글로벌이 나눔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장 잘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입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을 때, 가르치지 않기

    나눔의 위력을 알고부터는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가르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상대방이 틀린 소리를 해도, ‘그게 아니고요’ 하고 끼어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좀 틀리게 알고 있다고 해서 살아 가는데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거면 억지로 고쳐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습관이 들다 보니, 반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잘 보입니다. 굳이 고쳐주고, 바로 잡아줘야 할 것도 아닌데도, ‘그게 아니고’를 남발하는 사람을 보면 딱하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틀린 걸 바로잡아주고, 가르쳐주고, 도와준다고 해서 고맙게 여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가르쳐주면 잘 받아들이는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이미 성인의 반열에 올라간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틀린 걸 바로잡아주면 오히려 고까워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사활이 걸린 게 아니면 억지로 가르치고, 충고하고, 도와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묵묵히 지켜 보는 게 상수입니다.

    가끔 이야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가르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가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무심코 가르치거나 충고하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 제어 능력도 나옵니다.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야?’ 하고 스스로 제동을 걸고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평범한 주제로 신속히 빠져 나옵니다.

    가르치기 좋아하는 사람한테 걸리면 그날은 참 재수없는 날이 됩니다.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데 끊임 없이 가르치려고 덤비면, 피할 수가없습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저보다 연배가 위고, 윗사람이면 죽을 맛입니다. 말을 아무리 돌려도 가르치기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가르치는 자리에 서고 싶어 합니다. 상대가 지루해 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런 자리에 끼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게 충고입니다. 저는 충고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그 반대 자리에 자주 서봤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 놀라는 건, 사람들이 충고하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회사 바깥에서 저는 주로 듣는 역할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한테도 온갖 충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체로 들어주지만, 속으로는 참 주제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그래도 세 명으로 출발해서 남들이 안 한 해외직판을 가지고 회사를 이만큼 키웠고, 또 해외법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보다 경험한 게 훨씬 적은 사람들조차, 회계는 이렇게 해야 하고, 마케팅은 이렇게 해야 하고, 조직은 이렇게 해야 하고 하면서 참 충고를 많이 합니다. 저야, ‘맞아, 그런 점이 있어. 나는 그런 거 잘 못해,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히 듣고 맙니다. 당사자인 저도 잘 아는 문제들입니다. 다만 회사 형편이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못하는 것들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경영하는 것에 일체 충고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삶에도 거의 충고하지 않습니다. 물어 보면 제 경험을 이야기할 뿐, 물어보지 않는데 먼저 충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직원들과 만나서 밥을 먹을 때도 가르치는 쪽에는 거의 서지 않습니다. 다 쓸 데 없는 짓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굳이 가르쳐야 할 일이 있으면 제 경험을 나누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건 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방법으로 전달합니다. 딸은 제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메시지를 전달받으니까 그다지 저항하지 않습니다.

    가르치지 않고, 충고하지 않는 게 차라리 좋습니다. 도움조차, 도와달라고 먼저 요청하기전에는 먼저 나서서 도와줄 일이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도와주려고 나서다가 오히려 핀잔 들을 때가 많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지혜롭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멀리서 응원할 뿐입니다. 대신해준다고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와달라고 하면 범위에서만 도와줍니다.

    이 원리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스스로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도와달라고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도와주고, 충고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만하거나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묵묵히 있는 게 훨씬 낫습니다.

    질문하기

    가르치거나 충고하지 않고 내 경험을 나누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아니면 그나마 쓸 수 있는 것이 질문하기입니다. 질문하면 상대방은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소한 관심을 갖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질문하기만큼,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 드리지만, 우연히 만난 사람들 모임에서도 그 사람을 알기 위해 질문을 하면 정말 그 사람은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인지합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기할 것도 없는 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이야기하기 바쁘지 남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끔은 오래된 친구도 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저는 그 친구 삶을 어느 정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어떻게 사는 지 꽤 자세히 물어보고, 그 친구는 자기 삶 이야기하는 게 신나서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 친구는 저에게 질문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조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잠깐 만나도 조카들이 최근에 어떻게 사는지 묻습니다. 회사는 지금 몇 명인지, 아침에는 뭘 타고, 몇 시까지 출근하는지, CEO는 어떤 사람인지, 회사는 어떤 건물에 들어 있는지, 몇 평인지, 보증금은 얼마인지, 하는 일은 뭔지, 일은 재미 있는지, 주로 만나는 사람은 누구인지등등. 질문을 해보면 사람들이 자기 얘기 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조카가, 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또 상대방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식을 많이 얻습니다. 얼마전에도 집안 일 때문에 가족들이 다 모였는데 조카사위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펀드 회사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30분 정도 질문했는데 펀드 회사 운영 방법을 어느 정도는 다 알았습니다. 운영할 수 있는 펀드 총액을 지나치게 크게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고, 적게 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 지도 알았습니다. 펀드 운영 회사 CEO가 개인 자격으로도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펀드 회사 운영 방법은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조카 사위는 역시 신나게 이야기했습니다.

    대신 조카들은 제가 무슨 일 하는 지 거의 모릅니다. 해외직판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거의 모릅니다. 그들은 거의 질문하지 않으니까요. 저도 좀 자랑하고 싶은데 묻지를 않으니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 하기 바쁘지 남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이야기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잘난 척 하네’ 하는 비아냥이나 들을 뿐입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에게는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간단한 원리인데도 이걸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질문하면 참 편합니다. 20초 질문하면 20분을 떠들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물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질문하면 안 됩니다. 그건 스스로 목에 올가미를 매는 짓입니다. 안 그래도 말하기 좋아하고, 가르치기 좋아하고,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면 참 곤란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는 이런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는 게 최선입니다. 안 그러면 끊임 없이 화제를 돌려야합니다. 이런 사람과 가까이 앉으면 피곤합니다.

    지혜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는 노인의 기도는 음미할 만 합니다.

      < 어느 노인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ᆢ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이 주제도 참 여러 번 다룹니다. 이미 많이 들은 사람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처음 듣는 분은 적당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전언도 오래 썼기 때문에 이전에 한 걸 반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잠시 잊기때문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때때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티쿤식 해외직판 설명회

    [서울] 12/19(목) 오후 2시 충무로            참가신청
    [동경] 12/19(목) 오후 2시 西新宿            참가신청
    [오사카] 12/16(월)  오후 2시 心斎橋      참가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