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규칼럼 코리아는 다시 뜬다.”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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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창규 데이타뉴스 대표

    1930년 어느 날, 두만강 연안의 모 여관에서 한 젊은 여인이 밤새도록 흐느껴 울고 있었다. 옆방에 묵었던 유랑극단‘ 예원좌’의 한 단원은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연인즉 남편이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본군에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두만강을 넘어와 보니 이미 남편은 총살당한 뒤였다고 했다.

    그 단원은 이시우라는 사람이다. 그는 여인의 애절한 사연을 오선지에 담았다. 그리고 후에 한명천 작사, 김용호 개작을 거쳐, 가수 김정구에 의해 마침내 국민가요격인 <눈물 젖은 두만강>이 만들어졌다.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 찬 강이라는 뜻이다. 콩을 이고 건너다 미끄러져 콩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일이 많이 발생해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간도를 개발하면서 콩을 이고 두만강을 건넜다.

    콩의 원산지는 한국이다. 고조선 고구려의 땅 만주와 그리고 백제 신라, 가야의 땅 한반도다. 만주는 물론 한반도에 산재해 있는 신석기·청동기 유적지에서는 탄화된 콩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600년, 제나라 재상이었던 관중은“ 산융(山戎:동이족의 한 갈래)으로부터
    숙(菽:콩)을 가져와 온 세상에 퍼뜨렸다”고 기록했다. 중국 고대의 경제학서인『 관자(管子)』에도“ 제나라 환공이 만주지방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 전역에 보급했다”고 적혀 있다.


    1세기 무렵에 쓴 중국『 사기(史記)』에는“ 시(豉)는 외국산이기 때문에 아무나 손쉽게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도“ 고구려 선장양(善藏釀)”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고구려 사람들은 발효음식, 즉 술과 장을 잘 담근다’는 뜻이다. 신라 일성왕 때(139년)“ 서리가 내려 콩농사를 망쳤다”는 기록도 있다.

    청국장을 청나라 음식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폐백품목인 시(豉:메주)가 있고, 15세기에 지어진 골계서(滑稽書)에 법시(法豉)라는 말이 있으며, 1527년에 발간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푸른곰팡이를 띄워서 만든 장, 즉‘ 청국장(淸麴醬)’이라는 단어가 있다. 청나라는 1636년에야 건국되었다.

    우리말과 풍습에는 콩과 관련된 것이 많다. 된장, 간장, 두부, 청국장, 콩나물, 고추장 등은 콩으로 만든 대표적인 식품이다. 우리 민족은 장을 담가 먹는 항아리를 안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춘날 콩으로 귀신을 쫓는 풍습도 있다. 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는 속담이나‘ 숙맥(菽麥)’이라는 고사성어도 흥미롭다. 특히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온 말로 콩인지 보리인지 가릴 줄 모른다는 뜻이다.

    콩 연구가 유미경 씨의 저서『 우리 콩, 세계로 나아가다』(2007)에는 이러한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콩이 서양에 전래된 곳은 1739년 프랑스 파리식물원이라고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자서전에 의하면 1770년 영국에서 그의 고향인 필라델피아로 콩씨를 보냈다고 한다.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까지 우리나라에서 5,496종의 재래종 콩을 수집해 갔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대출판부에서 펴낸『콩: 大豆 Soybean』 (2005)에서 밝히고 있다. 미 농무부는 1947년까지 1만 개의 유전자형을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가기도 했다.
     
    수년 전 백두산을 거쳐 두만강을 다녀온 적이 있다. 선양에서도, 옌지에서도 만주의 끝없는 평야는 대부분 콩밭으로 덮여 있었다. 콩밭길을 따라 도착한 두만강은 그 넓은 만주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조선, 일제를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는 동안 흘린 수많은 눈물을 머금고 덧없
    이 동해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도 이 강을 콩알만한 눈물을 머금고 도강하는 탈북민들이 많다. 두만강은 잃어버린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땅과 콩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