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원 숲속의 대장장이 34년의 시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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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기프트서울 김건아기자 thegift-688@gmail.com

    상호: 숲속의 대장간
    대표: 이광원
    홈페이지: https://jsr2024.modoo.at
    업태. 종목: 제조업
    주소: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 90
    전화: 031-534-1576 / 010-4195-1576
    설립: 1982년

    “Erected for the revival of the New iron culture”
    -철기문화의 새로운 부흥-

    “대장간은 귀합니다. 그런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재산으로서의 대장간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쇠를 달구고 두들겨 만드는 기술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광원-

    경기도 구리에서 포천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백로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백로 주교가 있다. 다리를 넘어서면 마당에 노랗게 익은 살구나무가 보이는 아담한 전원주택 같은 모습의 “숲속의 대장간”이 보인다.

    이곳에는 35년째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는 이 광원 선생님과 두 수제자가 매일 불을 피우고 쇠를 달구어 호미와 낫 등 우리 전통 농기구를 만들고 있다.

    이번 명인명품 시리즈에서는 한국 대장장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숲속의 대장간”의 이광원 장인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숲속의 대장간 전경

    Q1. 처음 대장장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그림을 그리던 그림쟁이였습니다. 매형께서 대장간을 하고 계셔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돕고 있었는데 그림으로서는 밥벌이가 되지 않아 붓을 놓고 본격적으로 대장장이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Q2. 숲속의 대장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것인가요?

    원래 강원도 인제의 산속에 있었습니다. 이곳 포천으로 나온 지 몇 년 안 되었지요.
    당시 말 그대로 산속에 있던 대장간이라 숲속의 대장간이라고 이름을 지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Q3. 요즘은 대장간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데, 아직도 많은 대장간이 남아 있나요?

    예전에는 마을마다 2~3개씩 대장간이 존재했었고. 그때는 대장간끼리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그만큼의 수요가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언젠가부터 중국의 저렴하고 대량의 농기구들이 밀려들어오며 우리나라 대장간이 거의 사라져 버려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지금 국내에서 도매가 가능한 대장간은 충북 영주의 대장간과 우리 숲속의 대장간으로 이 둘만이 직접 쇠를 달궈 제품을 만들고 있고, 그 외에도 60여 개의 대장간이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4. 일반적으로 쇠를 녹여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시고 어떻게 작업이 이루어지나요?

    보통 사람들은 그저 철을 녹여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녹이는 것이 아닌 달구는 것이지요. 철을 달궈 부드러워졌을 때 두들기고 담금질하여 모양을 잡고 물건을 만들어 냅니다.
    철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철의 강도를 유지하는 것은 탄소로 카본의 함유량에 따라 강도와 종류가 나뉩니다. 너무 전문적인 용어들이라 정말 많은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는 분야이고, 단순히 철이라는 한 종류가 아닌 어떤 연장을 만들 것인가에 따라, 주문을 하는 사람의 사용 용도에 따라 각기 다른 철을 사용하여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쇠를 녹이는데 사용하는 탄(석탄)은 베트남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탄은 지역에 따라 열량이 달라서 불 관리가 힘들다는 점이 있습니다. 북한산 탄도 좋지만 들여올 수가 없고, 베트남산 탄이 열량이 높아 주로 사용합니다.

    포천에서 산삼 재배를 하면서 대장간에도 관심 있는 스마트 심마니와 이광원 수제자 김재훈(우측)
    직접 쇠를 두드려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연상하게 하는 숲속의 대장간 내부


    Q5. 기억에 남는 제품이나 고객이 있으신가요?

    모든 제품이 직접 쇠를 달궈 두드리고 만들어낸 것들이다 보니 모두 애착이 가고 소중합니다.
    어떤 물건은 팔기 위해 만들었지만 팔고 싶지 않아 판매를 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애초에 나는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일반적인 호미나 낫 같은 농기구들이 좋고, 애착이 가고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농기구를 보면 조상들의 지혜가 보입니다. 농사를 짓는 각 과정에 따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요. 그렇기에 외국에서도 우리의 호미를 보고 열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니 가격적인 면에서나 제품의 종류에 따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분들보다는 마니아층에서 주문이 들어옵니다. 원하시는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여 주문을 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는 주문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번 다시 만들어드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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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6. 하나하나 직접 만드시는 수제품인데 주로 어떤 분들이 주문을 하고 제품을 만드시나요?

    농기구를 좋아해서 전에는 호미를 많이 만들었는데 요즘은 낫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도 주문이 많이 들어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도가 아닌 전문 요리사분들이 사용하시는 칼을 많이 주문해 주십니다.
    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마니아층이 있어서 대부분 한번 주문하신 분들이 다시 재 주문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단 하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직접 두들겨 만든 것이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들이지요. 이렇게 만든 것 들은 절대 판매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작품을 두 개도 만들지 않습니다. 아니 만들 수가 없지요. 하나를 만들 때 모든 힘을 쏟아 넣기에 똑같은 것을 두 개를 만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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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7. 대장간에서 만드는 물건에도 시대에 따른 흐름이 있나요?

    그것은 물건을 만드는 대장장이에 창의성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일을 배우던 초기에는 일반적인 호미를 만들었지요. 요즘은 이 호미에 낫을 결합시켜 제품을 만들어 보았는데 미국에서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이렇듯 제품을 개발해서 만들어내고 판매를 하면 또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시대에 따른 제품으로 보자면 POLEAXE라는 미국 도끼를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개인용 캠핑 칼을 제작 해달라는 주문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존의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도 조금씩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만들기도 하고, 손님들이 직접 디자인을 해서 주문을 하는 것도 있지요.
    요즘은 방송국 시대극에서 사용할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디자인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광원 선생님이 직접 구상하고 만든 농기구- 호미에 긴 자루를 달아 편리함을 더했다.
    숲속의 대장간 이광원 대장장이

    Q8. 대장간 일이 무척이나 거칠고 힘든 일인데 어려운 점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일을 해오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요?

    맨땅에 헤딩을 했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주변에 집 몇 채 없는 강원도 인제의 산골에서 혼자 물건을 만들어 직접 팔러 다녔습니다.
    처음 판매를 하러 다니다 보니, 상호 신뢰가 없어 아무도 물건을 사주질 않았고, 직접 두들겨 만든 제품이라 말해도 잘 믿어주지 않았지요. 판매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15년간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고 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더군요.
    대장장이의 일은 힘든 일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3D를 모두 가지고 있지요.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대장간이 대부분 사라져 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웃 일본을 보면 800년이 된 대장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대를 이어 내려오는 그들의 기술과 정신은 존중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인제군의 군 의원께서 방문해 주셨습니다. 다시 인제군으로 돌아오라고, 군에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세상이 변하고, 우리의 것을 보존하고 소중히 하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지원을 해준다면 우리나라의 대장장이들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Q9.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대장간은 귀합니다. 이 귀한 대장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제의 산골을 나오며 항상 생각하던 모습의 대장간을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준비해 가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대장간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장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박물관, 갤러리 같다고들 하시지요. 이렇게 단순히 외형을 꾸미고 건물을 세워 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대장간이라는 장소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이어온 대장장이의 기술과 맥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세대가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기피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군들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일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바꿔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 일을 할 다음 세대 친구들이 더럽고 힘든 곳에서 일하지 않도록, 대장장이의 일을 부끄럽지 않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장간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대장간을 재정비하고, 인식을 바꾸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할 것입니다.

    Q9.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대장장이는 쇠를 두드려 만들어야 합니다. 쇠를 두드리지 않는 대장간은 대장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대장간이 재능이 없고 뜻이 없는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일본을 싫어하지만 그들이 기술을 이어내려 오는 정신과 방법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시장이 밀려오면서 많은 대장간들이 문을 닫고 사라졌지만, 어떤 일을 하던 위기는 있습니다. 그 위기를 잘 파악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위기를 탓하지 말고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보고 투자하고, 지금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뒤를 이을 세대를 위해 준비하고 대비했으면 합니다.

    “설마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미니 인터뷰

    수제자
    이름: 김 재훈
    나이: 31세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대장장이 일을 배우게 되신 건가요?
    일반 회사를 다니며 영업직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만의 기술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대장간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인가 만드는 일을 좋아한 것도 영향이 있고요.
    그래서 지금은 좀 힘들더라도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를 하자는 마음으로 일을 배울 수 있는 대장간을 찾아다니다 지금 선생님을 만나 뵙고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숲속의 대장간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아직은 제가 스스로 제품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선생님께서 만드시는 제품의 마무리와 작업하시는데 필요한 장비나 도구를 준비해 드리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 대장간은 불을 다루는 일이라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힘들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예전의 대장간은 층고가 낮아서 많이 덥고, 힘들었다고 하시는데, 지금은 작업장은 층고도 높고 오픈되어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각오를 하고 왔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든 일은 없습니다.

    ● 일을 하면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물건이나 좋아하는 제품이 있으신가요?
    아직 제가 어려서 그런지 칼 종류에 관심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만드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요. 지금은 낫이 만들 수록 애착이 갑니다. 일직선으로 갈아내는 칼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낫의 칼날을 가는 것이 기술도 요하고 매력적입니다.
    선생님께서 모양을 잡고 날을 만드시고 저는 마무리나 쉬운 일들을 하고 있는데, 이런 쉬운 일들도 아직은 많이 어렵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우선은 일을 열심히 배우려 합니다. 나중에 선생님처럼 뛰어난 대장장이가 되고 싶습니다.

    취재 후기
    이광원 부인은 현재 숲속 대장의 영업총괄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외무부장, 한국독립당 당수 등으로 활동했고 김구·여운형 등과 시사책진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이론 수립한 조소앙 독립운동가의 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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