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공모사업 임산물복합단지사업 1차년도 프로젝트 마치고ᆢ

    0
    85

    기적같은 날이 연속이다.
    포천시 역사상 공모사업에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십월중순부터 시작된 관리사. 임도공사. cctv. 스프링쿨러 기초공사(30톤 물탱크 3개 설치)와 그 외 사소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제8차 가을파종도 어김없이해야 했다.

    잡지사는 잡지사대로 20년 동안 책임자에게 경영전반을 맡겼다. 관련잡지사는 모두폐간했는데 업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나의 욕심으로 새로운 길을 찾기위하여 금년부터 두 가지일을 병행하고 있다.

    어렵게 선정된 연구소 프로젝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기술사의 비협조와 경험미숙으로 1차년도 마감일이 채 한달이 남지 않았는데 예산집행율이 저조해 프로젝트가 위기다.

    10월 중순이후 월화 또는 월요일만 출근하고 곧장 포천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낮을 보냈다. 11월 한달은 붉은 단풍잎과 함께 불꽃 같은 시간을 보냈다.

    12월까지 넘기지 않고 1차년도 사업계획표대로 모든 일정을 오늘 극적으로 마감하고 하산길이다.

    졸음을 참고 새벽길을 달려온 순호와 우금리 용사들 그리고 올해도 위기의 순간 달려온 상열이와 이래전 잊혀진 초등학교 친구 구원이가 합류해준 덕분이다.

    전쟁을 시작할 때는 깊은 고민을 하거나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되면 분석하고 깊이 파고들고 짧은 시간 집중력을 발휘하는 동안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

    이번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계획을 세우고 귀농 귀촌 프로그램을 이수한 것도 없이 몇가지 조사끝에 반쪽짜리 계획서 한장으로 시작한 일이다.

    모든 사업이 비슷하지만 처음 예상한 자금 보다 약50% 초과 집행되었다. 1년, 2년, 3년 투자금이 만만치 않다. 어느날 교육을 다녀온 아들 순호가 지도교수님 이야기라며 말한다.

    “아부지 우리처럼 씨삼만 파종하여 지금까지 성공한 예가 없대 ᆢ”

    나의 반응을 듣기 위함인지 교수가 하는 소리니까 그냥하는 이야기인지 불분명하지만 나의 고집을 꺽을 의도는 아닌줄 알지만, 자신의 청춘과 아빠의 노후가 걱정되어 한길로만 고집피우는 아빠에게 경고성 발언일 것이다.

    그래서 우짜라고ᆢ
    이분야에서 20년을 종사한 교수님 이야기니까 참고하시라고ᆢ

    모두가 실패했지만 아빠는 대안이 있다. 그리고 직접 확인 하지 않았느냐 그대로 시행하면 성공할 수 있다. 모두가 실패했더라도 우린 성공할 수 있으니까 힘빠지는 소리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나하고 시키는 대로하면 된다. 고 자신있게 힘주어 말했지만 내심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까지 4년차 파종현장 생태횐경은 거의 절망적이다. 생존율 평균5.6%에 생존율만큼 중요한 것은 상품성인데 상품성은 0,1% 미만이다.

    오래전 강원도 어느 심마니 노인께서는 나의 이야기를 물끄러미 듣고

    “상품성은 10년기준 0.001%이네 그렇게 알고 시작하고 지금이라도 포기를 하는것이 좋겠네ᆢ”

    조선의 반도체였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자원중 자원인 산삼이 산업화가 왜 되지 않았는지 조사를 다니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봐를 긴 시간동안 장황하게 설명하니까 다 듣고서 지금이라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충고를 했다.

    고향 옆 함양에서 젊어서 인삼재배를 하다가 농약때문에 무농약 인삼재배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지금은 산삼재배만 하고 계시는 또 다른 나의 스승이자 멘토이신 이선생님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씨삼만 파종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멀리서 찾아온 열정에 답례로 누구에게나 쉽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어려운 충고를 건널때도 새겨듣지 않았다.

    “인류의 스승은 자연이며 그 스승의 스승은 경험이다.”

    직업상 수 많은 직간접 경험과 불혹의 나이 이 후 무모한 도전과 실패의 끝에 얻은 교훈이다.

    실패하나 없이 이십대 삼십대 처럼 행하는 대로 이루어졌다면 오늘의 나는 없고, 아마도 다른분류의 인간이 되어있을 것이다.

    육신은 고달프지만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뒤늦께 알면서 지금 나는 행복하다.

    이유는 아주 비싼 지옥행 열차를 타고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인 연옥(煉獄)을 갔다 온 이유라면 이유다.

    나를 돕고 있는 아들순호는 굳은일 도맡고 강한 질책에도 꿋꿋이 버티며 칭찬에 인색한 아비의 날카로운 창끝을 온몸으로 맞서면서도 친구들 중 자기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과 딸, 아내도 내곁에 붙어 있고, 두자녀가 결혼 후 처음으로 둘다 백일만에 그들의 보금자리에 갔다. 딸아이는 아이가 늦어서 3년만에 딸 아이의 보금자리에 가보았다. 이렇게 무심한 아빠도 몇 없을 것이다.

    결혼 후 3년만에 처음으로 방문하면서 산에서 특별히 하산하여 간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들고가지 못했다.
    아이들보다 사돈 내외 보기가 미안했다.

    후세들이라도 돈때문에 배우고 싶은것, 꼭 해야하는 것도 못하는 인생은 살지 않도록 기반을 만들어 놓고 내삶을 마감하고 싶다. 그래서 1차로 그들에게 “우리아이 펀드”를 선물할 생각이다. 이 펀드는 메리츠 금융의 존리대표가 만든 것으로 그는 Y대2년을 다니다 자퇴 후 도미하여 큰성공을 한 후 가치 있는 그 무엇을 위해서 30년만에 고국으로 되돌아와 아직도 금융지식 후진성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여 직접만들고 직접 관리중인 평생펀드 이다. 나는 손녀에게는 백일선물로 내생애 최고의 선물을 했다.

    같은 선물을 외손자에게도 하기로 했는데 은행에가서 외손자증권계좌와 내통장과 연계를 해야하는데 시간 때문에 은행을 가지못해서 외손자 백일선물도 하지 못한 못난 할비가 되었다.

    단단한 육백만불짜리 하체가 고장이 났다. 제일 먼저 병원을 가야하는 일과 가장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더 생겼다.